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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온 아이스

[빅토유리] 1년 2개월

너의 모든 순간이 나의 전부. 그 순간들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유-우-리-!"

 

 

어둡게 깔린 어둠속에서 묘한 움직임을 하는 정체불명의 이불덩이. 그 속에는 카츠키가 들어있다. 문밖에서 들리는 빅토르의 목소리. 3번정도 울렸던 핸드폰 알람이 끝날 때 쯤이면 빅토르의 알람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카츠키의 잠은 이미 진즉에 다 깨었었지만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6시 30분. 빅토르가 찾아오는 시간. 항상 그 시간보다 3분정도 먼저 일어나 끔뻑끔뻑 느리게 눈커풀을 움직일 뿐이다. 이제부터 찾아 올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철컥-

 

 

문고리가 열리고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리고 두툼한 솜이불이 들려지자 이내 따뜻하고 큰손이 예고없이 훅 들어온다. 빅토르의 왼손이었다. 카츠키의 침대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성인남자의 몸이 절반 가까이 올라와있으니 당연했다. 빅토르의 늘씬하고 다부진 몸은 이내 카츠키의 침대 위로 완전히 안착했다. 순식간에 엮이는 두 몸. 카츠키는 자연스레 숨을 한번 크게 삼켰다가 뱉었다.

 

 

"유리. 아직 졸리지? 조금만 더 자는 걸로 할까?"

"...응."

 

 

부드럽고 낮게 울리는 빅토르의 목소리가 귀언저리에서 간지럼을 유발했다.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빅토르의 온기는 뜨겁고 포근했다. 뇌 한가운데까지 침입하는 듯한 빅토르의 목소리에 아찔한 따뜻함을 느낀 카츠키는 발가락을 말아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침대 위에서 완벽하게 엮인 두 성인 남자의 무게는 묵직했다. 뗄레야 뗄수 없는 것 처럼 단단하게 엮여 있는 빅토르와 카츠키는 그대로 눈을 감고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다. 언제나의 습관같은 거다. 서로의 머릿결을, 목덜미를 허리부터 등을, 마치 어젯 밤에도 잘 있었냐는 듯이 인사하듯 몸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마지막은 정해져있다.

 

 

"유리. 머리 들어볼까"

 

 

빅토르가 카츠키의 뒷통수를 한손에 감싸고 두 사람이 엉키는 바람에 저 멀리 밀어난 배게를 다시 끌고와 카츠키의 머리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바로 서로의 오른손을 깍찌끼고 정확히는 서로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맞췄다.

 

 

6시 39분. 아직 해가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하늘처럼 칠흑같은 어둠이 가득차있는 카츠키의 방안이 타액이 섞이고 입술과 혀가 얽혀 들리는 노골적인 소리로 가득찼다. 얼마나 지났을까. 귀를 기울이면 카츠키의 곧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가 들릴지 모른다고 생각 될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다. 뜨거운 숨을 뱉으면서 카츠키가 먼저 입술을 뗐다. 아직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아는지 빅토르는 순간의 몇초를 참지 못하고 바로 카츠키의 입술로 직행했다.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빅토르의 목덜미를 양팔로 껴안았다. 이제부터 해야하는 건 몸 여기저기를 탐해오는 빅토르의 손길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2016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 은메달 카츠키 유리]

 

 

 

 

짧게만 느껴졌던 빅토르와의 8개월이 끝이 나고 현역과 은퇴의 갈림길에서 앞으로 1년 만 더 선수생명을 이어보기로 했다.

 

 

'세계선수권 5연패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수지가 안 맞아. 유리'

 

 

웃으면서 내뱉던 빅토르의 말 한마디로 터져나온 뜨거운 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은하게 빛나던 은메달을 떨리는 손으로 쥐고 겨우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경기 후 이어진 갈라쇼에서 빅토르와 듀엣을 하기로 한 것을 알게 된 유리오의 잔뜩 뿔이 난 표정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때 함께 맞춰입은 의상은 가보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소중해졌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의 의상을 가지고 있기로 했다. 유우짱네 스케이트 오타쿠 세자매가 몇장이나 사진을 찍어줬다. 인터넷에는 비공개하는 조건으로 같이 찍은 사진을 몇 장 기념으로 받았다. 빅토르도 기뻐하는 얼굴로 보관해두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일본으로 귀국한 후 일어난 일이었다. 2연속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과 은메달리스트가 되버린 덕에 2주 정도는 각종 취재와 인터뷰에 시달리며 살았다.

 

 

7시 40분. 먼저 눈을 뜬 건 카츠키였다. 빅토르와 달뜬 몸을 섞은 후 다시 들었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짧게 잤는데도 정신이 맑았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근육이 당겼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듯 했다. 아픔에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이 상황에 말이다. 어느 새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고 침대 안쪽에서 곤히 잠든 빅토르의 앞머리칼을 조심스레 넘겨준 후 카츠키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노트북 옆에 올려둔 안경을 집어들어 얼굴로 향했다. 아침 해가 들고 어느 새 창문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아직 날씨가 춥기 때문에 닫은 채로 두기로 했다. 안경을 쓴 후 다시 침대위에 올라앉았다. 이제 곧 빅토르를 깨워야하니 다시 눕지는 않았다. 얌전한 얼굴로 자고 있는 빅토르의 얼굴은 가만히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빅토르."

"...."

"빅토-르?"

"...."

"...비샤."

 

 

미동도 안하던 빅토르가 뒤척거렸다. 처음 모스크바에 갔을 때 비샤라고 불리던 빅토르가 잊혀지지 않는다. 카츠키의 입에서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헤실헤실 들렸다. 따뜻함이 아른거리는 눈빛으로 이불밖에 나와있는 빅토르의 오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가볍게 얹었다. 금빛 반지가 동시에 빛이 났다. 아침의 정적이 끝나고 1층에서 카츠키의 부모와 마리가 영업준비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아까보다 더 강해진 햇빛이 카츠키의 방안에 완연했다. 카츠키는 머지 않아 끝이 날 고요함을 마지막까지 즐기기로 했다. 짧게만 느껴졌던 빅토르와의 8개월 후. 그리고 오늘 빅토르와의 1년 2개월째를 맞이했다.

 

 

 

 

 


유온아 12화에서 갈라쇼가 끝나고 일본에 돌아온 후의 느낌으로 써봤어요. 물론 원작에선 러시아 야콥의 빙상장의 유리오와 빅토르에게 달려가는 장면이 나왔지만 잠깐 일본에 들렀다 갈수도 있잖아요? ㅎ 그 간격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른다만 시합이 끝난 후의 두 사람의 아침모습을 제멋대로 그려봤어요. ㅎ(연인관계설정은 덤^^)